인간의 마음에는 우선 ‘나’라는 것이 있다. ‘자아’가 없는 정신이 있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강하든 약하든 ‘나’가 있게 마련이다. 내가 의식하고 있는 모든 것, 내 생각, 내 마음, 내 느낌 이념, 과거, 무엇이든 자아를 통해 연상되는 정신적 내용은 의식이다. 우리가 사회라든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과 관계를 갖고 거기에 적응해 가는 가운데 인간에게는 적응 태도 등의 역할을 준다. 이처럼 집단이 개인에게 준 역할, 의무, 약속 그 밖의 여러 행동양식을 융은 ‘페르소나’라 불렀다. ‘콤플렉스’란 의식, 무의식 모두를 구성하는 것이지만 특히 집단적 무의식의 내용을 이루는 콤플렉스를 '상'(이미지)이라고 한다. 의식의 중심으로서의 자아는 나의 정신의 의식된 부분에 불과하므로 그것이 나의 전체를 통괄하고 자각하려면 무의식적인 것을 하나씩 깨달아 나가는 의식화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 중 가장 먼저 부딪히는 무의식의 내용은 ‘그림자’이다. 그림자란 자아의식의 무의식적인 부분을 말한다. 무의식의 바다에 비유한다면 의식은 자그마한 섬과 같다. 자아란 그 자그마한 일부의 중심이다. 그래서 그것을 많은 콤플렉스 가운데 하나로 보고 이를 자아 콤플렉스라 부른다. 의식이란 마치 피부와 같은 표면이다. 의식은 자기 신체, 자기 존재에 대한 의식을 통해서 그리고 일련의 기억에 의해 형성된다. 의식은 무의식의 산물이다. 무의식적인 것을 의식화하려면 자아가 있고 의식이 있어야 한다. 무의식이란 무엇인가? 무의식의 개념은 머리로 생각해서 만들어낸 말이 아니고 경험을 토대로 얻은 사실에 붙인 이름이다. 융에 의하면 무의식이란 우리가 가지고 있으면서 아직 모르고 있는 우리 정신의 모든 것이다. 융은 무의식에 두 가지 층이 있다고 보았다. 하나는 그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 겪은 개인 체험 내용 가운데서 무슨 이유에든 잊어버린 것, 현실 세계의 도덕관이나 가치관 때문에 현실에 어울리지 않아 억압된 여러 가지 내용으로서 반드시 성적인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 그것을 포함한 모든 그 밖의 심리적 경향, 생각들 감정 등 이 모든 것이 구성된다. 무의식의 또 하나의 특징은 자율성이다. 무의식의 의식에 대한 관계는 대상적이다. 보상작용은 무의식의 중요한 기능이다. 다시 말해 무의식은 의식에 결여된 것을 보충하는 역할을 하며, 그러므로 그 개체의 정신적 통합을 꾀한다. 그림자는 보통 개인적 무의식의 특징을 나타낸다. 그러나 때로는 집단적 무의식 내용인 원형의 상을 띤다. 그것이 개인적 무의식의 내용인 경우에는 그것이 투사될 때 원형이 투사될 때처럼 무서운 파괴적 감정반응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 감정은 아직 인간적인 차원을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원형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다. 그림자는 인격의 전체를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게 마련인 것처럼 의식이 있는 곳에 무의식적인 것이 있기 마련이다. 자아와 외부 세계와 접촉하는 가운데 자아는 외부의 집단세계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행동양식을 익히게 된다. 이것을 융은 외적 태도 또는 페르소나라 하였다. 동시에 내적 세계, 즉 무의식계에 적응하는 가운데 외적 태도에 대응하는 내적 태도가 생기는데 이것이 심혼이라 부르는 것이다. 외적 태도나 내적 태도는 거의 여러 개의 인격체처럼 일정한 특징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외적 인격, 내적인 격이라 부르기도 한다. 외적 인격과 내적 인격 내에는 페르소나와 아니마 아니무스가 있는데 이것을 살펴보려 한다. 페르소나란 고대 그리스의 연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말한다. 페르소나는 집단정신의 한 단면이다. 그것은 흔히 개성이라고 착각하기 쉬운 가면이다. 사람들이 내 생각, 나의 신념, 가치관, 나의 것을 하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결코 자기의 생각이 아니라 남들의 생각, 즉 부모의 생각, 선생의 생각, 다른 친구들의 생각이라고 할 만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집단으로 주입된 생각이나 가치관인데 마치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페르소나는 내가 나로서 있는 것이 아니고 남과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나를 더 크게 생각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진정한 자기와는 다른 것이다. 우리나라 말 가운데 페르소나에 해당하는 말은 체면, 얼굴, 낯과 같은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사회집단이 그 집단의 특수한 성원에게 한결같이 요구하는 일정한 행동상의 규범이며 제복과 같은 것이다. 다음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살펴보면 아니마 아니무스란 무의식에 있는 내적 인격의 특성을 말하며, 간단히 말해 남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여성적 요소를 ‘아니마’, 여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남성적 요소를 ‘아니무스’라고 불린다. 이때 말하는 남성적, 여성적이란 사회적 통념을 넘어선 보편적, 원초적 특성을 말한다. 아니마가 의식되지 않아 미분화 상태에 있으면 그것은 원시적 감정과 통하게 된다. 그것은 침착하고 이성적임을 자랑하는 남성에게 폭발적 분노를 일으키게 한다. 아니마가 통합되지 않고 무의식 속에 너무 강하면 그는 무의식적인 자극에 쉴 새 없이 영향을 받아 여성화 되어 변덕스러운 사람이라는 평을 받게 된다. 아니무스가 미분화되면 그것은 따지는 버릇으로 표현된다. 그것은 자기의 생각이 정당하다는 것을 미리부터 정해놓고 시작하는 의논이므로 아무도 이론을 제기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이런 부정적 아니무스는 남성의 아니마를 유혹해 토론장으로 끌어들이지만 결국 남성은 자신의 미분화된 아니마-분노에 사로잡혀 화를 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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